이상주의냐 현실주의냐 – 굴원의 <漁父辭(어부사)>를 통해

굴원의 ‘어부사’는 세상의 혼탁함과 개인의 순수함 사이에서 벌어지는 깊은 고뇌를 담고 있습니다. 이 작품을 통해 우리는 삶과 철학, 그리고 개인의 가치를 어떻게 지켜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굴원의 통찰을 엿볼 수 있습니다.


<漁父辭(어부사)>

어부사 @한문쌤

굴원이 쫓겨나 강호에서 노닐며 못가에서 시를 읊조리고 다니는데 안색은 초췌하고 모습은 수척해보였다. 어부가 그를 보고 물었다.

“선생은 삼려대부가 아닙니까? 어쩌다가 이 지경에 이르셨습니까?”

굴원이 말했다.

“온 세상이 다 혼탁한데 나 홀로 깨끗하고 오든 사람이 다 취해있는데 나만이 깨어 있으니, 이런 까닭에 쫓겨나게 되었다오.”

어부가 말했다.

“성인은 세상 사물에 얽매이지 않고 세상은 따라 변하여 갈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탁하면 왜 진흙탕을 휘저어 흙탕물을 일으키지 않습니까? 뭇사람들이 모두 취해 있다면 어째서 술지게미를 먹고 술을 마시지 않으십니까? 어찌하여 깊이 생각하고 고결하게 처신하여 스스로 쫓겨남을 당하게 하십니까?”

굴원이 말했다.

“내가 듣건대 새로 머리를 감은 사람은 반드시 갓을 털어서 쓰고, 새로 목욕한 사람은 반드시 옷을 털어서 입는다고 하였소. 어찌 깨끗한 몸으로 더러운 것들을 만질 수 있겠소? 차라리 강물에 뛰어들어 물고기 밥이 될지언정, 어찌 깨끗한 몸으로 세속의 더러움을 뒤집어 쓸 수 있겠소?”

어부는 빙그레 웃고, 뱃전을 두드리며 누래부르면서 떠나갔다.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내 갓끈을 씻으면 되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내 발을 씻으면 되는 것을 쯧쯧…”

그리고는 떠나가서 다시는 어부와 말을 섞지 않았다.


해설

굴원은 자신만이 세상을 바르게 보고 있다고 믿으며, 혼란과 부패로 가득 찬 세상에서 스스로를 깨끗한 존재로 여깁니다. 그는 세상이 어떠하든, 자신의 순수함과 정직함을 지키기 위해 고독한 길을 걷기로 선택합니다. 그러나 어부의 노래는 다른 관점을 제시합니다. 세상이 어떻게 변하든, 그 변화에 맞춰 자신도 변화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어부는 흙탕물 속에서도 자신의 길을 찾을 수 있는 융통성을 지녀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창랑물이 깨끗하면 깨끗함에 자신을 맞추고 대응하고 창랑물이 더러우면 더러움에 맞게 자신을 맞추면 된다고 합니다.


이상주의와 현실주의 深思高擧(심사고거)와 與世推移(여세추이)

굴원과 어부의 대화에서 우리는 두 가지 삶의 자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굴원의 고결함과 청결한 원칙을 지키려는 태도입니다. 바로 본문에서 심사고거(深思高擧)라고 표현한 부분이죠. 또 다른 하나는 어부의 현실적이고 탄력적인 삶의 방식입니다. 바로 與世推移(여세추이)입니다. 굴원은 자신의 순수함을 지키기 위해 세상과의 타협을 거부하며, 그 결과로 고립을 선택합니다. 반면, 어부는 세상의 오염을 피하기보다는 그 안에서 자신의 길을 찾으려 합니다.

이 두 가지 태도는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굴원처럼 순수한 가치를 지키기 위해 고독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어부처럼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적응하며 살아갈 것인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은 각자의 삶의 철학과 가치관에 따라 다를 것입니다.


‘어부사’를 통해 굴원은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떤 가치를 지켜야 할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기회를 줍니다. 그의 이야기는 단순한 역사적 사실을 넘어서, 오늘날 우리의 삶에도 여전히 유효한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 각자는 굴원과 어부의 대화를 통해 자신만의 답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그 답은 우리 각자의 삶 속에서,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선택과 결정 속에서 형성될 것입니다.